말파(Marfa), 그 이름도 요상하다. 2천 명 남짓한 인구가 거주하는 텍사스 서부 깡촌 마을.
하지만 미니멀리즘 미술의 애호가에겐 성지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인 Donald Judd가 이주하고 작업을 한 곳이고 이곳에 그가 설립한 Chinati Foundation(마을 외곽에 위치)과 Judd Foundation(읍내 위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이름만 들러도 설레는 Donald Judd, Dan Flavin, John Chmaberlain 등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광활한 대지와 너른 공간에서 만끽할 수 있다. (도심 미술관의 북적거리는 전시장에서의 관람 체험과는 매우 거리가 먼 체험이 가능!)
미국 내에서도 머나먼 광야에 위치한 곳이지만, 현대미술 특히 미니멀리즘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에 한 번쯤은 꼭 방문하면 좋은 곳!
** Chinati Foundation에서 감명 깊게 본 작품 TOP 3 **
1. Donald Judd, 15 untitled works in concrete, 1980-1984
도널드 저드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치내티 파운데이션에는 저드의 설치 작품과 유품들이 정말 많이 보존되어 있다. 그의 생가이자 작업실에 수많은 철제 큐브 작품, 각종 유품 등이 있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15개 무제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생전에도 그는 전시물(작품), 전시공간(갤러리), 관람자와의 상호작용에 큰 관심을 가졌고, 이 때문에 너른 황무지로 이주하여 작업했다고 한다. 그가 이주한 Marfa의 황무지는 그의 작품에 가장 적합한 전시 공간이다.
15개의 사각형의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광야에 설치되어 있다. 각 2.5 x 2.5 x 5 미터의 크기를 하고 있어 관람자는 구조물 안과 밖, 그리고 옆을 지나다니며 작품을 체험하게 된다. 끝이 가늠되지 않는 넓은 들판이 작품의 바탕이자 캔버스이다. 그 위에 15개의 구조물들이 놓여있다. 내가 그곳을 밟고 움직이며 직접 그 크기와 넓이를 몸소 체험하는 시간만큼에는 나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대지미술 체험의 짜릿함이 이런 것인가. 전시장 속 작품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체험이다.
2. Dan Flavin, untitled (Marfa Project), 1966
Light Art라는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낸 댄 플래빈. 도널드 저드와는 동지로서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로 부상하였다. 부지 내에 산재한 구 막사 건물에 단독, 연속 설치된 댄 플래빈의 작품들은 시각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통상 플래빈의 작품은 도심의 전시실 내에 다른 현대작가의 작품과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원래 나는 플래빈 작품의 시각효과에 큰 감응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플래빈은 달랐다.
6동의 단층 건물(구 막사, 창고 등으로 사용되었던 ㄷ자 건물)에 단독으로, 또는 연속으로 설치된 그의 형광등 작품들은 강렬한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첫 두 동은 분홍색과 녹색, 그리고 다음 두 동은 노란색과 파란색, 그리고 마지막 두 동은 상기 4색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단순한 사선 또는 직선의 형광색 전등은 멀리서 보면 평면적이고 흡사 빛나는 회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양한 배열의 입체감과 빛과 색상이 사람에게 주는 고유의 시지각 효과들을 경험할 수 있다.
제임스 터럴이 자연광으로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면, 말파에서의 댄 플래빈은 인공적인 빛의 도구를 활용하여 환상을 경험하게 하였다.
3. Robert Irwin, untitled (dawn to dusk), 2016
이 작품도 오랫동안 감동을 선사한 작품이다. 디귿자의 군부대 단층 병원 실내에 얇은 실크 스크린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한 것인데 관객은 동선을 따라 걸어가며 체험하는 작품이다. 암흑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옅은 검은색의 벽면을 지나가게 되며, 이윽고 순백의 공간에 다다른다. 그리고는 또다시 점점 더 옅은 백색의 공간으로 진입한다.
새벽부터 해질녁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하루 도중에 느끼는 자연광 그 자체만을 압축하여 체험하는 느낌이 든다.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 보자면 마치 지옥에서 천당을 오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 군부대 병원이라는 공간의 특징을 염두해 보자면 죽음과 생명을, 그 사이를 오가는 느낌도 든다. 많은 설치 작품, 체험형 작품을 감상해 봤지만, 이 작품이 준 마음의 울림은 정말 컸다.
** 참고하면 좋을 것들 **
* 보너스 작품, Prada Marfa
말파 부지 외에도 El Paso 방면 국도로 가다보면 약 1시간 거리에 <Prada Marfa>라는 설치 작품도 하나의 관람 포인트이다! 도로 한가운데 말 그대로 '갑툭튀'처럼 자리하고 있으니 지나치지 마시고 잠시 차를 세워 관람해 보시길!
* 유의하면 좋은 점:
1) 예약 등 일정 관리 잘하기
2) 물과 간식 챙기기
3) 체력 안배하기
치내티 재단의 미술관은 군사기지를 매입 및 조성한 것으로 거대한 부지를 사용하고 있다. 부지 밖에도 도널드 저드의 생가 및 작업실 등 여러 건물들을 도보 이동하며 인솔자 동반 하에 관람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Full Collection 경우 6시간 소요된다. 도보 이동이 많으니 운동화 필수, 체력 비축도 필수. 중간에 각자 점심을 해결하고 재집결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물과 간식 등을 잘 챙기면 좋고 관람 전후로 체력 안배하는 것을 꼭 염두해야 관람과 여행을 잘 즐길 수 있다!
* 예약 권장
인솔자 동반 하 제한된 인원만 관람이 가능하니 예약을 꼭 하는 것이 좋다. Full Collection Tour의 경우 매일 오전 8시 30분 1일 1회 가이드 투어만 제공된다.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 방문 시 시차와 소요시간 등을 감안하여 관람 전날 말파에 도착해야만 원활한 Full Collection Tour 이 가능한 셈이다. (Marfa는 중부시, CST 적용 지역)
* 숙박
2천 명 사는 작은 깡촌 마을 치고는 미니멀리즘의 성지답게 좋은 호텔들이 몇몇 있었다. 읍내 유서 깊은 호텔 Hotel Paisano가 멋졌고 Judd Foundation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부띠끄호텔도 Hotel St. Geroge도 깔끔해 보였다.
아무래도 주요 광문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미술관 관람에만도 2 full days를 할애하게 된다. 이동 시간을 감안하면 권장은 3박 4일이 된다. 필자는 에어비앤비 등을 이용해 합리적인 가격대에 숙박을 했다.
* 가는 법
샌 안토니오에서 차로 6시간, 엘 파소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이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드넓은 West Texas의 광야를 운전하며 미니멀리즘 성지를 오고 가는 것 자체도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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