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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투어

메닐 컬렉션

by 뤼딩 2023. 8. 17.

보수적인 정치성향 대표 격인 텍사스. 기껏해야 카우보이, 로데오 정도가 생각난다. 휴스턴을 생각해 보면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 에너지, 우주항공, 의료, 항만 등 물류 기업들이 즐비한 미국의 4대 대도시권이라는 다소 삭막한 느낌이 들뿐, 좋은 미술관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현대미술 애호가라면 일부로라도 메닐컬렉션이 소재하고 있으니 놓치지 말고 방문해 보자. (물론 메닐컬렉션 외에도 훌륭한 미술관이 많다!)

 

공립 미술관은 지역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가꾸어 나가므로 그 수준은 지역사회 전반적인 문예에 대한 존중과 애호로 결정되고 발전한다. 하지만, 사립 박물관에는 설립자의 정신과 가치관이 강하게 반영되고, 지역사회와의 상호작용과 개방성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메닐컬렉션은 설립자인 도미닉/존 드 메닐 부부의 진보적인 정신, 개방성과 접근성,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에 여전히 미국을 대표하는 유수의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한다.

 

3만 5천 평에 달하는 거대한 메닐캠퍼스에는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본관과 사이 톰블리 갤러리가 있고, 인근에는 로스코 채플, 리치먼드홀(댄 플래빈) 등이 산재해 있다. 특히 추상표현주의, 아프리카 등 토속 미술 소장품은 매우 훌륭하다. 너른 부지에 다양한 전시관을 방문해야 하니 감상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소장품과 건축에 담긴 설립자 부부의 정신도 함께 음미해 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메닐 컬렉션에서 꼭 봐야 할 TOP 4 **

 

1)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

 

메닐 부부에 의해 캠퍼스 부지에 1964년에 추상표현주의의 대가인 로스코에게 작품의뢰가 되어 1970년 로스코 사망 이후 1971년에 준공된 공간이다. 현재에는 메닐컬렉션과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메닐 캠퍼스 내에 가장 먼저 들어선 공간이다. 현재도 종교, 종파와 무관하게 인류의 존엄과 상호존중을 도모하기 위해 영적인 성찰을 촉진하는 공간이다.

 

8 각형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14개의 로스코의 대형 작품이 걸려있다.  그리고 은은한 자연광 유입을 위해 천장에만 간접 채광창이 있다. 내부에 걸린 그의 작품은 8천6백만 달러에 경매된 “Orange, Red, Yellow” 같은 대표작과는 정반대의 느낌을 준다. 14개의 대형 작품 모두 매우 짙은  검은색과 진한 남색과 보라색이 덧대어져서 오랫동안 들여다봐야만 작품을 음미할 수 있다. 일부 방문객들은 각자의 종교와 방식으로 기도, 참선, 명상을 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 성경, 꾸란 등 다양한 종교의 영문 경전이 비치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채플의 앞뜰에는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헌정된 바넷 뉴먼의 “Broken Obelisk”가 설치되어 있다. 당대에 지금보다도 더욱 보수적이었던 미국사회, 텍사스 지역의 정치적, 종교적 분위기를 감안해 보면 드 메닐 부부의 진보적인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2) 싸이 톰블리 갤러리(Cy Twombly Gallery)

 

파블로 피카소 이상으로 일반인들에게 당혹함과 치기 어린 도전감을 던지는 작가이다. 그래도 파블로 피카소의 큐비즘은 평면에서 입체의 여러면을 단번에 표현하다 보니 뭉개진 형상이지만 형상이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싸이 톰블리의 작품은 당대의 동료 예술가들에게도 혹평을 받았다 하니, 일반 관객이 당혹해하고 혹평을 해도 무리스러운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수많은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Untitled(New York City)”(1968)은 2015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7,050만 달러(약 920억 원)에 낙찰되었으니 현대미술계에서 그의 위상은 상당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프리츠커 수상자인 현대미술관 건축의 거장이기도 한 렌조 피아노가 싸이 톰블리의 작품정신 등을 반영하여 설계했다는 톰블리 헌정 전시관이다.

 

갤러리를 방문했다면 한 전시실을 가득 채운 “Untitled (Say Goodbye, Catullus, to the Shores of Asia Minor”(1994)를 꼭 보고 나오자. 이 작품도 작가가 주제의식으로 자주 선택한 그리스 로마의 역사와 신화, 고대 문학과 관련되어 있다. 부제는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로마의 서정시인인 카툴루스의 ”Farewell to Asia”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인의 친형을 방문하기 위해 소아시아를 방문했으나, 그의 방문 중에 형제는 죽음을 맞이하고 홀로 배로 귀환하면서 지은 시가 작품의 모티프라고 한다. 작가의 노트에 따르면 그림은 소아시아에서 로마로 고독한 귀환한 시인의 동선처럼 작품도 우측에서 좌측으로 감상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1972년 로마에서 작품을 시작해 1994년 버지니아에서 작품을 완성한 작가 개인의 동선과도 유사성이 있다고 한다.

https://gagosian.com/quarterly/2021/11/18/essay-say-goodbye-catullus-shores-asia-minor/

 

3) Michael Heizer의 대지미술

 

본관 건물 앞 Menil Park에도 조각과 설치 미술을 감상하는 것도 놓쳐선 안된다. 그중에도 대지미술의 선구자인 마이클 하이저의 설치작품 3개는 꼭 감상하자.  "Isolated Mass/Circumflex No.2" (최초 설치 네바다 북부 Massacre Dry Lake), "Dissipate( 최초 설치 네바다 북부 블랙록사막)",  "Rift"(최초 설치 네바다 남부 진드라이 호수)의 최초 설치작품은 이제 온 데 간데없지만, 메닐 캠퍼스에서 작가정신과 함께 관객들에게 예술의 지평은 무한함을 알려주고 있다.

 

작가의 주도로 Dissipate와 Rift는 2018년에 인근의 Menil Drawing Institute로 이설 되었다고 한다. 기존 Menil Park의 푸른 잔디밭보다는 Institute옆 자갈밭이 작가의 최초 설치환경과 더 유사할 것 같다.

 

4) 메닐 본관

 

본관은 81년 현대미술 건축설계의 대가인 렌조 피아노가 설계의뢰하여 87년 개관한 작품이다. 건축주인 메닐부부의 철학을 반영하여 지역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지상 2층, 지하 1층의 백색 건물을 만들었다. 렌조 피아노 후기 건축의 특징인 천장과 지붕도 특색이 있다. 철강 이파리(Ferrous leaf)라 별명의 이파리 모양의 곡선을 300회 반복하시키고 위는 투명유리를 활용한 복층 구조로 지붕을 설계하였다. 텍사스 남부의 작열하는 태양광과 뜨거운 태양열을 적절히 통제하면서도 건축주의 요청인 자연광 하에서 작품을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게끔 설계한 것이다. 그래서 날에 따라, 그리고 개관시관 중에도 일조량과 조건의 변화에 따라 내부 공간의 밝기도 변화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주의할 점 (휴관일 숙지하기, 체력 안배 및 시간 관리)

 

메닐컬렉션 본관은 특이하게도 월요일뿐만 아니라 화요일도 휴관이다. 일반적인 휴관일인 월요일만 생각하고 화요일에 방문했다가 낭패를 겪을 수 있다! (다행히 로스코채플은 월요일만 휴관이다.)

 

메닐캠퍼스는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본관 그리고 인근의 드로잉 인스티튜트 외에도 싸이 톰블리 갤러리, 리먼드 홀(댄 플래빈 작품 설치),  로스코채플, 비잔틴프레스코채플 등 모두 합쳐  총 3만 6천 평 정도라고 한다. 단기 방문객으로서 하루 만에 다 방문하려면 적절한 체력안배 및 시간관리는 필수다!

 

* 가는 법

 

휴스턴은 미국 4대 대도시권이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의 휴스턴으로의 직항은 없다. 직항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나 댈러스를 경유해서 들어갈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댈러스로 들어가서 오스틴, 휴스턴, 샌안토니오 등 텍사스 동부를 둘러보는 것도 권할만하다.

 

* 흥미로운 점 1 (대를 이은 미술에 대한 열정. 메닐컬렉션과 디아예술재단)

 

드 메닐 부부는 5자녀를 두었는데, 막내딸 필리파 드 메닐도 컬렉터이자 전시기획자로서 1974년 Dia Art Foundation을 공동 설립하였다. 이 재단은 뉴욕주에서 Dia Beacon and Dia Chelsea에서 유명 미술관을 운영 중이다.

 

* 흥미로운 점 2 (모두에게 평등한 감상의 기회)

 

메닐컬렉션의 홍보 영상을 보면 매 영상 말미에 ”Free admission, always.”임을 강조하고 있다. 입장료 없음을 굳이 강조하는 것도 걸작품도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것임을 나타내는 철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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