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양미술사

17세기 프랑스 미술

by 뤼딩 2023. 6. 9.

베르사유 궁전 - 17세기 프랑스 미술의 대표 건축물

17세기에 프랑스는 유럽의 신흥 강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태양왕으로 불린 루이 14세(1638-1715)는 절대왕권을 휘둘렀으며 파리를 유럽의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시켰다. 이탈리아 로마 카톨릭 교회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성 베드로 성당을 개축하고 화려함을 자랑했던 것처럼 프랑스에서는 미술이 국왕의 힘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모든 미술은 왕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베르사유 궁전이다. 이 곳은 본래 루이 14세의 선왕인 루이13세가 자신의 사냥터에 지은 작은 저택이었다. 이곳에 루이 14세는 자신의 궁전을 지었다. 원래 큰 늪지였는데 궁전을 세울 수 있는 곳으로 땅을 메우고 건축하였다. 수많은 인력의 노동이 건축에 할애되었다. 베르사유의 건축은 루이 르 보(1612-1670)가 처음에 맡았는데 건축 시작되고 얼마 있지 않아 사망하자 그를 뒤이어 쥘 아르두앵 망사르(1646-1708)가 건축을 완성하게 되었다. 건물의 장식은 샤를 르 브룅(1619-1690)이 그리고 정원은 앙드레 르 노트르(1613-1700)가 책임을 맡았다.

베르사유의 목적은 왕의 권력을 시각화하는 것이었고 그의 권력이 일상적으로 행사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궁전에서 지평선까지 시야를 가리는 것은 없으며 정원은 왕의 권력에 복종하듯 매우 인공적이고 깨끗하다. 건물 양식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는 바로크 양식보다 고전주의적이다. 파사드의 기둥과 창문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탈리아 바로크에서 보이는 요철적인 특징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일정한 비율로 반복되는 고전주의의 건축양식을 따른 것은 로마 바로크 미술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이때까지 유럽 미술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의 것을 따르기 보다 독자적인 미술을 갖겠다는 자신감이 함의된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실내 장식은 매우 호화스럽게 꾸며졌다. 태양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큰 창으로 낮에는 빛을 유입시켰으며 밤에는 샹들리에를 밝히고 거울을 사방에 둘러 공간이 빛나게 하였다. 궁전 곳곳에는 루이 14세의 권력을 과시하는 조각과 그림을 비치해 놓았다. 루이 14세를 아폴론과 같은 신화의 인물로 대치시킨 그림이 한 예이다.

 

프랑스 아카데미의 시작

1648년에 프랑스 왕립 회화아카데미가 만들어졌다. 당시 사회는 루이 14세와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헌신해야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프랑스 아카데미의 미술가들은 자율적인 작업 활동이 제한되었다. 국가를 위한 작품만 제작할 수 있었고 그 결과물은 귀족들에게 전시해야했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판매하거나 길드를 형성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프랑스 아카데미는 고전주의의 양식을 최고의 미술로 취급하였다. 니콜라 푸생(1594-1665)의 미술 이론을 떠받들었다. 푸생은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30살이되었을 때 로마로 이주하여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지식이 풍부하였고 교양을 지닌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매우 계획적이고 주제와 전체적인 구성이 알맞게 연결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술의 선행을 따르듯, 그는 그림 속의 인물들의 양감과 형태를 조각적으로 그려내었다. 푸생의 <사빈 여인의 납치>(1637-1638)를 보면 전쟁의 상황을 마치 무대 위의 연극의 한 순간처럼 그려냈다. 전체적인 구도와 구성이 완벽함을 볼 수 있다.

 

17세기 프랑스 일반 회화

궁정 회화가 아닌 일반 프랑스 회화는 고전주의를 중시하는 프랑스의 풍토와 이탈리아와 인접한 플랑드르 지역의 특색이 동시에 묻어난다. 대표 화가들로는 앙투안 르 냉(1588-1648), 루이 르 냉(1593-1648), 마티외 르 냉(1607-1677), 조르주 드 라 투르(1593-1652) 등이 있다. 이들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렸다. 예를 들면 대장간에서의 장면이나 농부들이 식사하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특히 라 투르는 카라바조의 명암기법을 이용하여 종교화를 그렸다. 촛불의 빛을 사용하여 강렬한 명암의 대비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의 대표작으로 <양초와 막달라 마리아>(1640)가 있다.

 

 

*참고문헌

E. H. 곰브리치, 백승길, 이종승 역, 서양미술사, 예경, 1997

H. W. 젠슨, 김윤수 외 역,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78

캐롤 스트릭랜드, 김호경 역, 클릭 서양미술사 동굴벽화에서 비디오아트까지, 예경, 2006

이은기, 김미정, 서양미술사, 미진사, 2008

 

Versailles, Palace of versailles gardens, Image License: Free for use from Pixabay

반응형

'서양미술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세기 유럽의 미술  (0) 2023.06.11
로코코 미술  (0) 2023.06.10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  (0) 2023.06.08
플랑드르 바로크의 화가들  (0) 2023.06.07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  (0) 2023.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