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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중세 미술의 시작

by 뤼딩 2023. 5. 17.

1. 초기 기독교 시기

중세 시대는 대략 4세기부터 14세기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 '중세'라는 용어 자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중세는 그 이전의 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의 중간에 있는 시대를 가리킨다.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의 시기, 그리고 르네상스 이전의 시기를 중세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이 시기만의 주요한 특징에서 기인한 용어가 아니라 르네상스 인들이 이 시기를 폄하하는 시각에서 기인한 용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중세의 시작은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 혹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승인된 325년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2. 초기 기독교 회화

초기 기독교 미술은 대략 1세기부터 서로마 지역이 야만족들의 지배 아래에 있던 500년 정도까지의 미술을 이야기한다. 회화는 카타콤의 벽면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다. 카타콤은 로마의 지하 묘소이다.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기에 기독교인들은 숨어서 모임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지하 묘소에서 모여 예배를 드렸다. 카타콤의 벽화에 남긴 회화는 그리스 로마의 회화와는 달리 이상적인 육체 표현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현세보다는 내세가 중요했던 그들은 현세로부터의 구원과 내세에 대한 영광을 그림 속에 표현했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성당의 벽면과 천장에서 초기 기독교 그림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성당에는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화가 그렸다. 프레스코화는 석회를 바른 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린 것이고 모자이크화는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여서 만드는 그림이다.

 

3. 초기 기독교 건축

초기 기독교 시기에는 새로운 교회들이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스의 신전들은 신상을 두는 곳이었고 주로 의식은 신전 밖에서 이루어졌다. 반면 기독교에서의 예배는 많은 이들이 모여서 예수의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기 때문에 교회는 큰 규모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짓기 위해 로마인들의 바실리카 건물 형식을 차용하였다. 바실리카는 로마인들이 상업 회의소나 재판소로 사용하던 건물의 형태이다. 이후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장방형을 T자로 변형시켰는데, 이로써 건물이 십자가의 모양을 하게 되어 예수의 제사를 지내는 기능을 더 강조하는 형식을 갖게 되었다. 베드로 성당도 원래는 이러한 바실리카 형식의 건축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베드로의 무덤이 놓인 바티칸의 언덕을 교회에 내어주었다. 이곳에 바실리카 형식의 교회를 만들어 미사를 지냈는데 이후 15세기부터 개축이 진행되어 현재 베드로 성당의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4. 비잔틴 미술

비잔틴 미술은 콘스탄티누스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긴 때부터 그곳이 터키에 의해 멸망한 때까지의 시기에 이루어진 동로마 제국의 미술을 일컫는다. 약 330년 경부터 1453년까지의 미술이다. 비잔틴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은 단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지어진 <아야 소피아>이다. 아야 소피아는 바실리카 위에 거대한 돔을 올려놓은 구조를 갖고 있다. 4개의 아치가 정사각형을 형성하고 그 위에 돔을 얹은 구조이다. 그중 서로 바라보는 두 면은 반원을 이루고 있다. 돔의 하단에는 40여 개의 아치형 창문이 있어서 마치 건축물이 자체적인 후광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의 많은 부분이 금으로 장식되었고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현실적인 느낌이 아니라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건축물이다.

비잔틴 미술의 가장 훌륭한 모자이크화는 이탈리아 라벤나의 몇 건축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 비탈레 교회의 제단 주변에는 유스티니아누스와 황후 테오도라가 그려져 있다. 이 모자이크화에서 당시 비잔틴 미술의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다. 황제와 황후는 주변 신하들에게 둘러싸여서 빵과 포도주를 헌납하고 있다. 그들은 주변 인물들보다 화려한 의복을 입고 있고 왕관을 쓰고 후광을 갖고 있지만 신체 비율이나 얼굴의 생김새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에서 인물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강조했던 것과 매우 다른 모습이다. 이렇게 실제적인 재현을 피하는 것은 중심인물과 전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을 더 효과적으로 부각하기 위함이었다.

비잔틴 건축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자이크는 매우 아름답다. 로마의 모자이크가 불투명한 대리석을 사용했다면 비잔틴의 모자이크는 유리를 사용한 것으로 반짝이는 효과가 크고 다양한 색감을 표현할 수가 있었다.

 

*참고문헌

E. H. 곰브리치, 백승길, 이종승 역, 서양미술사, 예경, 1997

H. W. 젠슨, 김윤수 외 역,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78

캐롤 스트릭랜드, 김호경 역, 클릭 서양미술사 동굴벽화에서 비디오아트까지, 예경, 2006

이은기, 김미정, 서양미술사, 미진사, 2008

 

아야 소피아 내부, 이스탄불, Image License: Free for us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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