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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

by 뤼딩 2023. 6. 8.

17세기 네덜란드 건축

1648년 프랑드르 지역은 스페인의 통치를 벗어나서 독립국가인 네덜란드 공화국이 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시민들이 모여 구성한 공화국을 이룩하였다. 이들은 상공업을 발달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고 식민지 확장에도 힘을 썼다. 같은 시기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는 크고 화려한 교회 건축물을 짓는 데에 열중한 반면 네덜란드에서 그러한 건축물에 관심이 없었다. 낮은 가정집들 사이에 비교적 소박한 장식을 한 교회나 시청 등의 공공건축물들이 곳곳에 솟아 오른 모습이 네덜란드 도시의 풍경이었다. <마우리츠호이스>(1633-1644)는 야코프 반 캄펜이 지은 건축물인데 17세기 네덜란드 지역의 모델 격안 건축물이다. 유럽 다른 지역의 건축물과 비교하자면 전면이 밋밋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좌우 대칭을 이루며 페디먼트의 부조와 높은 지붕은 건물의 포인트가 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단아하다는 평을 받는다.

 

17세기 네덜란드 초상화

네덜란드가 독립을 쟁취하는 데에 민병대가 큰 역할을 했다. 스페인 왕실에 맞섰던 민병대의 조직은 이후에도 지속적인 연합을 지속하였으며 상징적인 사교 모임으로 발전하였다. 이들은 기념일에 맞추어 거리 행진을 하였으며 단체 초상화를 주문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룹 초상화는 여러 사람들이 개입되기 때문에 화가에게 쉬운 작업이 아니다. 각 사람을 공평하게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명했던 초상화가로 프란츠 할스(1580-1666)가 있다. 그는 네덜란드의 시민들을 생생하게 그림에 담았다. 그는 정형화된 포즈로 그리기를 거부하고 자연스럽고 독특한 포즈와 구도를 선택했으며 각 인물들의 성격과 개성을 포착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당시 인기가 많았던 집단 초상화가로는 렘브란트도 있다. 렘브란트는 그림 앞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 하에 그림 속 인물들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초상화를 보고 있자면 그림 속 인물들과 대면하고 있는 느낌이 들게 된다. 이렇게 네덜란드의 그룹 초상화는 네덜란드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맞물려 종교화나 역사화에 버금가는 중요한 장르로 자리잡게 되었다.

 

페르메이르

이 시기의 네덜란드의 중요한 화가로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가 있다. 페이메이르는 델프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화상이었으며 여관을 운영하면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많은 작품들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는 풍속화를 마치 경건한 종교화인 것처럼 그렸다는 평을 받는다. <우유 따르는 여인>(1658)을 보면 주인공은 극히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빛이 감도는 듯한 공간을 연출하여 무척 경건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페르메이르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르네상스 때부터 사용되었던 일종의 카메라이다. 3차원의 풍경을 2차원의 평면에 고정시키는 광학 장치이다. 페르메이르는 카메라에 찍힌 것들을 그림에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림을 들여다 보면 빵의 거친 질감, 여인의 헤진 옷, 벽에 박힌 못 등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정밀하게 표현하여 일루전을 만들어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사물의 세부를 매우 정밀히 관찰하고 그것을 그림에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얀 판 에이크 이래로 이어져온 북유럽 회화의 전통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도 그 전통이 이어졌다. 꽃, 음식, 그릇, 책, 악기, 과일 등 다양한 사물을 묘사하였는데 들여다보면 매우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기도 하며 그 안에는 다양한 상징들을 담고 있다. 빌렘 클라츠 헤다(1594-1680), 빌렘 칼프(1619-1693), 레이첼 로이흐(1664-1750)는 당시 유명했던 정물화가들이다. 네덜란드 정물화에 등장하는 해골, 썩은 과일, 거품, 시계, 모래시계, 연기, 악기 등은 바니타스의 상징이다. 바니타스의 상징이 담긴 그림을 바니타스화라고 한다. 바니타스는 헛됨, 덧없음, 공허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바니타스화는 무상한 인간의 삶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그림아다. 또 다른 정물화의 종류로는 꽃 정물화가 있다. 꽃 정물화는 당시 네덜란드의 풍토를 잘 반영하였다. 17세기에 네덜란드는 식물학이 성장하였고 도감이 발달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 꽃 정물화는 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풍경도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그 전에는 풍경이 종교화나 역사화의 배경으로서만 등장하였다. 네덜란드 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해안과 농가 등을 그림으로 담길 원했다. 네덜란드 풍경화는 낮게 깔린 지평선과 하늘의 구름을 중심적으로 그렸다는 특징이 있다. 당대의 유명한 풍경화가로는 살로몬 반 로이스달(1600-1670)이 있다.

 

*참고문헌

E. H. 곰브리치, 백승길, 이종승 역, 서양미술사, 예경, 1997

H. W. 젠슨, 김윤수 외 역,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78

캐롤 스트릭랜드, 김호경 역, 클릭 서양미술사 동굴벽화에서 비디오아트까지, 예경, 2006

이은기, 김미정, 서양미술사, 미진사, 2008

 

Salomon van Ruysdael, River Landscape with Ferry, 1649, Oil on canvas, National Callery of Art, Image Use: Public Domain, Credit Line:&nbsp;Patrons' Permanent Fund and The Lee and Juliet Folger Fund. This acquisition was made possible through the generosity of the family of Jacques Goudstikker, in his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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