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판 에이크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물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비슷한 시기의 북유럽 예술가들은 자연에 영감을 받아 예술을 발전시켰다. 매우 사실적인 세부 묘사를 중요시하는 그림을 그리는 경향이 생겨났고 특히 초상화가 발전하였다. 플랑드르의 화가 후베르트 판 에이크가 유화를 발명하였다. 기존의 템페라는 물감 마르는 속도가 빨랐다. 유화는 이에 비해 마르는 속도가 더뎠기 때문에 색채를 혼합하여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더욱 넓어졌다. 훨씬 더 미묘하고 세밀하게 명암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후베르트의 동생 얀 판 에이크(1390-1441)는 사실주의 그림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1434)이 대표적인 예인데,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할 만큼 세부 표현력이 뛰어나다. 양감과 질감의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 그림 속 인물들의 옷은 그 재료의 원래적 속성대로 무척 부드러워 보이며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그 재료의 속성대로 무척 매끄러워 보인다. 얀 판 에이크는 얼굴의 수염 구멍까지 묘사할 정도로 세밀하게 그림을 그렸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북유럽 지역은 1517년 마르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에 의해 변혁의 시기를 맞았다. 각 나라마다 종교와 정치, 그리고 경제까지 사회 전반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현재의 네덜란드 남부 지역에 해당하는 스헤르토헨보스에서 살았던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는 매우 초현실주의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그린 화가이다. 그의 이미지들은 매우 기괴한 상상에서 탄생한 그로테스크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은 단연 세 폭 제단화인 <쾌락의 동산>(1505-1510)이다. 패널을 닫은 상태에서는 두 폭의 그리자유 그림이 있다. 여기에는 우주가 탄생되는 상상의 순간을 그렸다. 세계는 원형이고 위에는 하늘, 아래에는 땅이 있으며 땅에서는 나무와 각종 모양의 형체들이 탄생되고 있다. 제단을 열면 세 폭으로 나뉜 제단화가 펼쳐진다. 왼쪽 그림은 태초의 낙원, 중간 그림은 인간의 탐욕적인 모습들, 그리고 오른쪽 그림은 지옥이다. 인간들은 누드의 상태인데 해괴망측한 모습들을 하고 있으며 탐욕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들이다. 사이즈가 거대해진 식물이나 동물들도 함께 그려져 있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곳곳에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의 유혹과 관련된 도상들이 발견된다. 오른쪽 패널은 지옥의 공간으로 이곳에서 인간들은 벌을 받고 있다. 갖가지 기괴한 모습들로 고통받는 인간들이 그려지고 있다. 보스는 이러한 끔찍한 그림들을 왜 그렸을까? 여러 해석들이 있다.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과 함께 생각해 본다면 타락해 가는 인간들의 모습에 일침을 가하는 교훈적인 의도가 담겨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원죄를 가진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 욕망을 절제하지 않으면 생기는 결과를 기괴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비슷한 시기 북유럽의 또 한 명의 유명 화가는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1525-1569)이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그림에 대한 요구도 변화하고 있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그 이전의 종교인들처럼 거대한 종교화를 주문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들은 종교적인 그림이 아닌 다른 종류의 그림들도 그리기 시작했다. 브뤼헐은 풍속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된 화가이다. 그는 보스의 풍자적인 면에 영향을 받았지만 보스와는 달리 그의 주변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일하는 모습들을 그렸다. <농부의 결혼>(1568)은 한 농부의 결혼식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신랑과 신부가 등장하고 손님들과 함께 모두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장면이다. 하객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고 악사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지만 사람들이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이나 인물들을 부풀리게 표현한 모습들에서 풍자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장님들의 우화>(1568)은 장님들이 한 줄을 지어 서로를 의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림을 그림이다. 제일 앞에 있는 장님은 앞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넘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바로 뒤의 장님도 넘어지기 직전이면 그 뒤의 장님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가고 있다. 장님에 대한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어리석은 면모를 비유하며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브뤼헐과 같은 당시의 풍속화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린 후 가게에 진열해 놓고 팔기도 하였다. 주문을 받으면 그림을 그렸던 생산 시스템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브뤼헐의 자화상이 포함된 <화가와 구매자>(1565)를 보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과 그 뒤에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구매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화가 자신의 표정은 매우 불편해 보인다. 주문자의 입맛에 맞게 그림 그리는 자신 또는 화가에 대해 불만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참고문헌
E. H. 곰브리치, 백승길, 이종승 역, 서양미술사, 예경, 1997
H. W. 젠슨, 김윤수 외 역,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78
캐롤 스트릭랜드, 김호경 역, 클릭 서양미술사 동굴벽화에서 비디오아트까지, 예경, 2006
이은기, 김미정, 서양미술사, 미진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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