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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르네상스의 천재, 미켈란젤로

by 뤼딩 2023. 5. 31.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예술 세계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와 가까운 지역 카프레제에서 태어났다. 그는 13살이 되었을 때 기를란다요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곧 이후 로렌초 디 메디치의 눈에 들어와 그의 수양아들이 된다. 이때부터 그는 메디치가에서 소유한 많은 고대 조각들을 접하고 배울 수 있게 되었다. 1494년에 미켈란젤로는 피렌체를 떠나서 볼로냐에서 조금 머물고 이후 로마에서 살다가 다시 피렌체로 되돌아갔다. 이 시기에 유명한 <피에타>(1499)와 <다비드>(1501-1504)를 만들었다.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 놓인 피에타는 예수를 무릎에 놓고 앉아 잇는 성모 마리아상이다.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는데 마리아의 옷주름에서 발견되는 섬세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매우 사실적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후 그의 어머니에게 안겨 있는 순간을 표현한 것인데, 축 늘어진 예수의 근육은 매우 사실적이게 묘사되었다. 시체 해부를 통해 터득한 신체의 특징들을 참고하여 예수의 늘어진 자세를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큰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고 있어서 안정감을 주며 마리아의 치마폭을 이용하여 삼각형을 완성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의 역할이 돌에서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리석 안에 갇혀 있는 인물을 해방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그렇기에 미켈란젤로는 한 덩어리의 돌만 조각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기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피에타>에만 자신의 서명을 새겨놓았다. 성모 마리아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에 서명을 새겨 넣었는데 자신의 이 걸작품이 흡족했던 모양이다.

 

<다비드> 상은 미켈란젤로가 1500년에 피렌체로 돌아온 후 주문받게 되면서 제작한 조각이다. 구약성경 속 인물인 다윗은 이스라엘의 신을 조롱하던 거인 골리앗과 맞서 싸워 이긴 영웅의 인물이여 추후 왕이 되는 사람이다. 이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상이 구현해 냈던 완벽한 비례, 균형, 조화를 완벽하게 적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훌륭하다. 당시 피렌체를 통치하던 공화정의 이념을 대변하기에 매우 적절한 작품이었다. 원래 피렌체 대성당에 놓이기 위해 주문되었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제작 이후 놓일 위치가 재논의되었다. 조각을 보존하기 위해서 실내에 위치하는 것이 더 이로웠으나 정치적인 이유에 따라 시청 앞 광장에 놓이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던 피렌체에게 필요한 것은 애국을 상징하는 영웅상이었다. 다비드 상은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용기와 자유를 상징하는 영웅으로 매우 적합한 인물이었다.

 

미켈란젤로는 회화로도 걸작품을 남겼다. <천치창조>(1508-1512)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실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이다. 교황은 원래 미켈란젤로에게 12사도들을 그려달라고 주문하였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교황을 설득하여 천지창조의 주제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기존의 건축 구조가 천장으로 이어지게 끔 그리자유 기법으로 건축 구조물을 그려 넣었고 그 사이사이에 주제에 맞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9개의 면적을 만들어 천지창조와 관련된 그림들을 그리고 창문 위의 삼각형 공간에는 무녀와 예언자들을 그려 넣었다. 그는 통틀어 약 340여 개의 인물상들을 그려 넣었으며 이 대작을 홀로 4년 만에 완성하였다. 미켈란젤로는 이 거대한 천장화를 위하여 수없이 많은 드로잉을 그렸고 다양한 자세를 묘사하기 위해 연구하였다. 마치 조각처럼 느껴지게 양감을 살려서 인체들을 그려내었다. 인체 표현의 다양함과 세밀함을 보자면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의 천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천지창조>를 완성하고 몇십 년 후 미켈란젤로는 같은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벽에 <최후의 심판>(1534-1541)을 그리게 되었다. 약 400여 개의 인물들을 그려 넣었는데 전체적으로 매우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중간에 위치한 예수는 구원하는 자애로운 신이기 보다는 심판을 하는 엄정한 신으로서 묘사되고 있다. 이 그림을 본 교황은 "주님 제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세의 '최후의 심판' 도상은 천국과 지옥을 주로 우편과 좌편으로 나누었는데 이 작품은 연옥을 사이에 둔 상하 구조로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구원보다는 추락을 강조하고 있다. 원근법의 구성에 반하여 위의 인물들은 크게, 아래의 인물들을 작게 그려서 떨어지는 무게감이 느껴지게 되어 있다. 마리아 조차 중재인으로서 자비를 베푸는 모습이 아닌 아닌 예수 옆에서 그에게 기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었는데 바르톨로메오 성인이 들고 있는 살가죽의 얼굴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얼굴이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건축물로는 <성 베드로 성당의 돔>, <로마 카피톨리누스 언덕> 등이 있다.

 

*참고문헌

E. H. 곰브리치, 백승길, 이종승 역, 서양미술사, 예경, 1997

H. W. 젠슨, 김윤수 외 역,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78

캐롤 스트릭랜드, 김호경 역, 클릭 서양미술사 동굴벽화에서 비디오아트까지, 예경, 2006

이은기, 김미정, 서양미술사, 미진사, 2008

 

 

James Anderson, Michelangelo, La Pietà, about 1855-1877, Albumen silver print, Terms of Use: Open Content, Credit Line: The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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